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예루살렘 왕국 (문단 편집) === 의료 === 수많은 순례자들이 지속적으로 예루살렘을 순례했기 때문에 자연스레 환자들도 많이 발생했다. [[구호기사단]] 역시 이름대로 병들고 약해진 [[순례자]]들을 보살폈고, 병원은 종교적 자선을 위해 건립되어 의사와 약제사, 수녀들이 종사했지만 모든 진료는 하느님의 뜻에 따라 무상으로 이루어지는 성스러운 봉사 행위였다. 하지만 일손 부족으로 일반인들의 혜택은 진료보다는 수용 시설 같았고, 중세 시대 의료는 귀족들만의 특권이었다. 그나마도 방혈법이 자주 애용되었고[* 방혈법은 [[고대 그리스]]의 의학자 [[히포크라테스]]와 [[고대 로마]]의 의학자 갈레노스에 의해 도입된 치료법이다. 갈레노스의 이론은 중세 내내 의학계를 지배했고 [[이븐 시나]]를 비롯한 이슬람 의사들도 그 영향에서 예외가 아니었다. 다시 말해, 피 뽑는 건 이슬람 의사들도 똑같았다(...)], 외과술의 발전은 정체되어 이발소에서 외과 수술이 횡행했을 정도였다. 위생 개념 자체도 근대 이후에 비해서는 열악한 수준. 또한, 고위층의 여성들은 [[흑사병]] 같은 피부발진을 일으키는 [[전염병]]을 방지하려는 믿음으로 헤나같은 재료로 피부가 드러나는 부분에 아름답게 점을 찍는 화장술이 유행하기도 했다. 악마가 그 화장을 보고 이미 병에 걸렸다고 착각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예를 들면 감기고 정신 질환이고 모든 질환은 일단 (현대의 체온 재듯이) 피를 뽑고 시작했다. 사탄의 기운이 들러 붙었다는게 그들의 믿음이었는데 허약해진 환자들은 도중에 졸도하거나 악마가 너무 강력해서 사망하는 경우가 빈번했다. 여담이지만 중세 시절 방혈법이 널리 쓰인 이유의 하나는 금욕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던 성직자들의 남아도는 정력을 조절하는데는 피를 뽑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었기 때문이라는 학설이 있다. 또한 간질 환자에게 복음을 읽어주고 흰 개의 털을 뿌리면 완치된다는 둥. 두통은 만월이 되기를 기다려서 오밤중에 전라의 몸으로 전력 질주하며 달빛을 쐬라는 둥. 전위적인 아방가르드 행위예술 수준, 딱 그 정도였다. 한 이슬람 의사의 유명한 기록에는 도끼에 다리 상처를 입은 기사를 보고 지혈을 하려는 그에게 서방 의사는 저 이교도 놈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며 저러면 기사가 죽을 거라 말하며 본인이 치료하겠다고 하자, 다친 기사는 서방 의사 말을 따랐는데, 별안간 날이 잘든 도끼를 꼬나 쥐고 다친 다리를 절단해버렸고. 기사는 쇼크사로 사망... 그 서방의 의사는 성호 긋기를 시전...아멘 두통 있는 여인을 진료하는데 머리 속에 악마가 있다고 해서 자신이 치료하겠다 하자 가여운 여인은 의사의 말을 따랐고, 머리에 칼침을 놓고 소금을 뿌려 비벼대면서 퇴마술을 시전해서 주님을 가까이서 모시게 만드는(...), 아멘 이슬람 의사가 경악을 금치 못하는 수준이었다. 이 지경이니 일반 시민들을 서방 병원 진료를 극도로 두려워하게 되었으며, 환자들의 상태가 말기 4기 정도 암환자급으로 나빠져서 막장에 다다라 도살장 끌려가듯이 끌려가서는 안락사는 고사하고 행위 예술가한테 도살되는 실정이었다. 위의 행태는 그나마 외과적으로 시도를 하는거라고 보여지지만 실상은 대부분 기도로 병을 낫게 하려는 세태가 만연했다. 현대 의학에서 병과를 세분화하여 전문의가 있듯이 중세 시대에도 특정 치유 기도 전문 성직자가 있었다. 피부병에 걸리면 저쪽 성직자에게 감기이 걸리면 이쪽 성직자에게 방문하고, 그리스 신화처럼 특정 성인들에게 기도를 하면 나아지는 효험이 다 달랐다고 믿었고 그렇게 행해졌다. 그따위로 믿는 이유가 있는데, 현재 우리가 상상하는 도덕적이고 선한 성인은 근세 시절에나 정립이 된 것이고, 중세 암흑기 시절 성인은 죄인들에게 특정 병을 퍼트리고 다니는 성인으로 인식되어져 있었고 그 병에 걸리면 지은 죄를 빌며 치유되기를 기도하는 개념이었다. 반대로 이슬람 의술은 당대의 [[이븐 시나]](Ibn Sina)가 훌륭한 의학서인 '의학정전'을 집필하였고 [[연금술]]에서 이루어진 다양한 시도의 부산물로 화학 지식이 축적되어 덩달아 의학수준도 발전했다. 교류의 물꼬가 트이자 서유럽 의사들도 앞 다투어 이슬람 의학을 배웠고, 서유럽의 의술이 크게 발전하는 계기가 된다. [[예루살렘]] 수복의 [[축복]]은 [[아이러니]]하게도 이슬람 의술의 유입이었던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